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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세상

상식, 법 그리고 과학 ; 지구평면론의 헤게모니 획득 전략

by MIR.K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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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법 그리고 과학의 영역에서 논의의 주제는 어떻게 헤게모니를 획득하는가 

헤게모니를 잡아보자

0. 지구평면론자들에게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는 태양을 여호수아가 멈추었다고 믿는 종교적 원리주의자 이거나 반지성주의자가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넘어갔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와 더불어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는 수많은 지구평면설과 관련된 영상 중 일부를 보고 난 후에 지구평면론자들이 본인들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심지어 여러가지 실험도 하며 본인들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은 그런게 아니다! 그 논리나 실험은 이런 점에서 틀렸어! 라고 말할 생각은 없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지구평면론이 과학계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는 이론이 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았다. 

 

1. 상식의 영역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상식'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으로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등 보통지식을 말한다. 추상적인 용어의 정의가 일반적으로 그러하듯이 사전에 나와있는 정의와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함의는 다른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란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유사한 구성원들이 일정 시기(또는 시대)에 공유하는 기초학력 수준의 지식이다. 따라서 상식은 생활양식 차이, 가치관의 상이함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구성원 특성에 따라 그룹별로 통용되는 상식은 다를 수 있다.

 시대에 따른 상식의 변화는 간단히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1687년(뉴턴이 만유인력법칙의 내용을 담은 책을 발간한 해이다.) 당시 조선에 살던 사람들은 국가의 최고통치자가 혈연에 따라 세습되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세습하는 행위가 상식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식이 시대에 따른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책을 통해, 문화와 생활양식의 차이 등에 따라 상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보도하는 내용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럼 상식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소피아 로젠펠드가 지은 상식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저자는 상식이 주로 도시에서 인쇄 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엘리트들이 정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상식이라는 수사적인 표현이 엘리트가 아닌 노동자, 농민의 평범한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 대해 나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상식의 정의와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상식보다는 정치 아젠다(이슈)에 더 가까운 해석으로 보인다.  

 다만, 상식을 만드는 주체와 확산의 도구는 엘리트와 미디어(책의 표현에 따르면 인쇄 매체)라는 해석에 동의한다. SNS의 특성을 고려하여 예를 들자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정치인, 논객(엘리트) 들의 '글' 과 '말'은 누가 더 상식적이냐는 논쟁의 영역으로 쉽게 빠져들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엔터테이너, 인플루언서의 '사진'과 '영상'은 상식의 영역에서의 논쟁을 만들기 보다는 (상업과 연계된 혹은 연계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의도적)논란을 만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2. 법의 영역

 법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규범이라는 것은 한 사회가 일반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통된 가치관을 말하고 좀더 넓게 해석을 할 때, 공식화 표준화된 강제력(벌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상식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법은 사회의 체계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표준화, 공식화된 우리의 상식이다.

 좀 더 일상용어에 가깝게 만들어 보자면 법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정한 규칙과 약속이다. 법을 적용 받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규칙아래에서 일정한 의무와 권리가 발생되고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다. 이러한 강력한 법의 효력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3권 분립의 원리에 따라 만드는 사람(기관, 국회)과 해석 및 판단을 하는 사람(기관, 법원) 그리고 적용하는 사람(기관, 행정부)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의 특성은 법조항의 변화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법 또한 상식과 마찬가지로 시간(시대)이 흘러가며 변화되고, 구성원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영향을 받지만 그 변화의 폭은 상식과는 비할바가 아니다. 이는 사회의 규칙과 약속을 쉽게 변경할 경우 가져올 혼란과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또한, 법은 논쟁과 토론이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우선 입법과정, 즉 국회 내에서의 논쟁이 있을 수 있고 법 조항이 지나치게 시대가 요구하는 상식과 괴리된 경우를 제외하면 법을 가지고 논쟁을 할 일은 많지 않다. 법정에서의 심리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내 생각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원고, 피고)의 행위가 어떤 법 조항에 해당하는 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내는 과정에 가깝다.

 

3. 과학의 영역

 과학이라는 단어는 어떤 영역이라기 보다 방법론을 나타내는 단어에 가깝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대학의 단과대는 대부분 과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과학적 방법이란 귀납(경험)을 통한 연역(가설)적 추론을 하는 것이며, 그 가설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주체 및 객체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일관성 있게 적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만유인력에 대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증명을 한다면 ① 사과가 떨어지네? 공도 떨어지네? 뭐 다 떨어지네? 달은 왜 안 떨어져?(경험) ② 어? 달도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가설) ③ 앗 달도 떨어지는 구나(실험 및 증명)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②, ③ 의 과정에서는 과학의 언어인 수학을 활용하여 증명을 하는 것이 필수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과를 머리에 맞는다고 이런 식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과학은 시공간을 포함한 우리가 사는 우주의 규칙에 대해서 탐구하고 이해하는 방법론이자 학문이다. 위에 서술한 상식과 법 중 규칙에 해당하는 법이 그러했듯이 과학 또한 규칙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가 매우 어렵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과학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부분은 사실 기술(공학)의 발전이며 과학의 발전은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가 생기고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약 100~150년 전에 이미 성립된 과학이론을 현실에 접목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기반과 인적, 물적 인프라가 갖춰진 상태에서 기술이 발달하였기 때문이지 과학 자체가 발전하였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과학의 변화가 어렵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어느 나라의 어떤 대학(연구소)의 실험실이든 실험자가 이론에 따라 세팅을 하고, 실험결과를 받아보았을 때 그 실험결과가 이론과 다르게 나온다면. 정말 모든 실험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실험이 잘못되었구나, 다시 세팅을 잘 해보아야지'

 그런데 이론과 다른 실험 결과들이 계속 쌓이고,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더이상 이론의 유지가 어렵다는 것에 대해 과학계의 일반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갈 때 즈음, 세상(우주)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등장을 하고 과학이론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패러다임 쉬프트라고 한다. 이 때 새로운 이론 또한 과학계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수학을 언어로 설명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서는 토머스 쿤이 저술한 과학혁명의 구조에 자세하게 나와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4. 지구평면론의 헤게모니 획득전략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지구가 둥글다는 증명, 증거 등을 가지고 논쟁을 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지구평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과학계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함이다.

 우선, 상식의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려면 내가 엘리트(분야별 전문가)이며, 사진과 영상 보다는 '말'과 '글'을 이용하여 주장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물론 영상을 활용하는 경우 다큐멘터리 형식과 같이 긴 호흡으로 나의 주장을 '말'하는 경우에는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려면 ① 지구가 평평하다는 경험(증거)를 열심히 모으고 ② 수학을 언어로 사용하여 지구가 평평하다는 탄탄한 이론(가설)을 수립한 뒤에 ③ 그 이론(가설)이 시, 공간과 사람(실험자) 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일관적으로 적용되는지 확인(증명) 하면 된다. 이 때, 그 수학적 이론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도 잊지 말자. 

 나의 지구평면론에 대한 짧은 경험으로는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과학의 영역에서 ① 항목을 열심히 수행한 뒤에 ② 항목으로 이어서 진행하지 않고 상식의 영역으로 옮겨가 논쟁과 확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과학을 도구로 활용하지만 수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을 '유사과학'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지구평면론을 좀 더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면 열심히 수학공부를 하고 이론을 완성시켜 보자.

 

5. 과학기술인과 전공자들에게

 유사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논쟁을 하지말았으면 좋겠다.

 과학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내가 중, 고등학생이던 시절의 대한민국에 한하여는 그렇다. 위에도 서술하였듯이 과학은 어떠한 분과학문이라고 하기보다는 방법론을 말하는 것에 더 가까운 영역인데 경험과 실험, 이론에 대한 고찰은 하나도 없이 개념 주입, 문제 풀이만 반복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가. 이러한 교육환경 속에서 매일 해가 뜨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지구가 움직이는 것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이 천동설을 주장할 때 그것이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난 오히려 그러한 주장이 개념 주입과 문제풀이식 교육보다는 더 과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경험적 근거를 토대로 이론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하고, 그것도 어렵다면 문제풀이 하기전에 과학이론의 발전사를 세세하게 설명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6. 결론

 다들 논쟁할 시간에 기후위기 대처 방안이나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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